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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지금의 현대자동차가 있기까지. 현대자동차의 기술 발전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과거 선진 업체로부터 기술적 협력을 받은 현대자동차는 점차 많은 기술력과 노하우를 축적해 한 차종씩 고유 모델을 개발하며 국산화율을 높였습니다. 이어 미국 시장에 진출해 연구소를 설립하고 일본과의 기술 격차를 최소화하는 등 시대별·기종별로 한국을 대표하는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캐나다와 미국 시장 진출에 성공
l 포니 엑셀을 수출하며 미국 시장에서 현대자동차의 기술력을 인정받았습니다
포니로 고유 모델을 보유하게 된 현대자동차는 이후 중형 고유 모델인 Y카와 앞바퀴 굴림 수출 전략 차종인 X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독자 개발 능력을 키워나갔습니다. Y카와 X카 개발도 미쓰비시와의 제휴를 통하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점차 기술 자립도를 높여나갔습니다. 포니를 통해 자동차를 어떻게 개발하는지 체득한 현대자동차는 Y카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신차 개발 프로세스를 구축하면서 동시에 앞바퀴 굴림 방식의 수출 전략 차종 X카의 개발도 진행했습니다.
Y카는 1983년 5월 스텔라라는 이름으로 발표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두 번째 고유 모델이자 중형급으로는 첫 고유 모델이었습니다. 스텔라는 출시 직후부터 큰 인기를 끌며 그동안 국내 중형차 시장을 대표하던 대우 로열 시리즈의 아성을 무너뜨렸습니다.
스텔라가 등장한 지 2년 뒤 X카가 포니 엑셀이라는 이름으로 베일을 벗었습니다. 포니 엑셀은 본격적인 수출 시대를 연 차종인 동시에 포니, 스텔라에 이은 세 번째 고유 모델입니다. 초기 포니 엑셀은 2박스 해치백 스타일이었으며 4개월 뒤에는 분리된 트렁크를 단 4도어 세단형 프레스토가 출시됐습니다. X카 프로젝트는 1986년 9월 3도어형인 스포티를 양산하면서 마무리됐습니다. 현대자동차는 X카 개발 과정 중 이미 시판을 시작한 포니2와 스텔라로 캐나다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했고 그 자신감을 기반으로 미국 진출을 위한 시장조사에 들어갔습니다. 1986년 2월, 현대자동차의 포니 엑셀이 미국 플로리다 잭슨빌 항에 상륙했습니다. 포니 엑셀은 미국 시장에서 1년 만에 20만 대를 판매하는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1987년에는 총 26만 3천610대를 판매해 미국 수입 소형차 연간판매 1위에 등극했고 이어서 1986년 6월 미쓰비시와 공동 개발한 그랜저를 출시해 국내 고급차 시장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알파엔진을 통한 기술 자립과 독자 엔진 개발
l 알파엔진은 현대자동차가 독자 개발에 성공한 엔진입니다
그랜저의 등장은 현대자동차의 기술력이 선진 업체로부터 기술을 제공받는 것에서 벗어나 협업단계로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현대자동차는 1988년에는 그랜저 공동 개발을 통해 얻은 기술을 바탕으로 만든 Y-2카 쏘나타를 출시했습니다. 중형차로서는 국내 최초로 앞바퀴 굴림방식을 적용한 쏘나타는 곧바로 국내 중형차 시장을 평정했습니다. Y-2 쏘나타는 기존의 고유 모델과 달리 디자인과 설계를 모두 현대자동차 기술진의 역량으로 이루어낸 독자 모델이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1980년대 들어 다양한 고유 모델을 개발함은 물론 캐나다와 미국 등 선진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했으며 이 과정에서 차체 설계와 디자인 등의 부문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자동차 개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엔진 및 변속기 분야는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미쓰비시에 로열티를 지불하던 데서 나아가 자체적인 기술력으로 엔진과 변속기를 생산할 수 있도록 연구 인력 확보에 힘을 쏟았습니다. 또한 국내외의 뛰어난 연구 인력을 확보한 뒤 경기도 용인의 마북리에 연구소를 개설했습니다. 미쓰비시는 현대가 독자 엔진 개발을 그만두면 구형이 아닌 신형 엔진을 내주고 로열티도 낮춰주겠다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현대자동차가 엔진 개발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미쓰비시의 우려가 엿보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북리 연구소의 첫 결과물은 1991년 1월 완성된 알파엔진입니다. 이는 1천억 원의 연구비와 300여 대의 엔진 시제품, 200여 대의 트랜스미션 시제품과 150여 대의 시험차량 등을 투입한 대규모 역사의 산물입니다. 현대자동차는 알파엔진을 통해 비로소 기술 자립의 원대한 꿈을 이루게 됐습니다. 알파엔진은 주력 차종인 엑셀보다는 물량이 적은 스쿠프에 먼저 탑재해 양산 검증 과정을 거친 뒤 다른 차종에도 확대 적용했습니다. 현대자동차의 알파엔진 개발은 한국 자동차 산업이 일본과의 기술 격차를 상당히 극복했다는 의미일 뿐 아니라 후속 독자 엔진 개발에 가속을 붙여 현대자동차의 파워트레인 개발 능력이 일취월장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글. 권규혁(현대자동차 브랜드전략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