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현대 아반떼컵 레이스 출전을 위한 동계훈련. 2차 심화과정에 들어갔습니다
지난 회에서 설명해 드린 것처럼 2차 동계훈련부터는 집중적인 코스 공략에 들어갔습니다. 1차까지는 아반떼 스포츠에 대한 적응이라고 하면 2차부터는 심화학습 단계입니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2차는 전체적인 레코드 라인과 기어 변속 시점 숙지, 브레이킹 포인트와 가속 시점 설정에 대해 배웁니다. 이제 점점 더 어려워지고 실제 레이스에 출전하는 레이서들과 같은 중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우선 2차에서는 타깃 타임(목표 기록)을 설정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주행 기록을 토대로 타깃 타임을 설정하고, 타깃 타임이 완성되면 에버리지(평균 기록) 설정에 들어갑니다. 20대 피 끓는 청춘인 유문세 씨의 교육 과정은 늘 저보다 두 걸음 정도 앞서갑니다. 차분하고 매 순간 감정을 다스리는 것에 매우 익숙합니다.
l 이른 아침부터 훈련을 위한 철저한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역시나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레코드 라인을 숙지하면서 고군분투하는 동안 유문세 씨는 기록과 싸우며 벽에 부딪히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다행히 2차 훈련에서 레코드 라인을 정확하게 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코스에서 스핀하고, 좌절하고, 한계에 부딪히면서 타깃 타임과 에버리지를 만들었을 때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이제는 들쭉날쭉한 기록이 아닌 평균 기록 차이가 0.8초 이내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예선 시뮬레이션이 시작되면서 또 한 번 좌절의 쓴맛을 느끼게 됩니다. 기뻐할 틈도 없이 유문세 씨와 같은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진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입니다.
l 전체적인 레코드 라인을 미리 숙지합니다
2차에 집중된 가이드 랩 모습입니다. 인스트럭터들이 운전하는 차를 따라 레코드 라인을 숙지하는 과정입니다. 가이드 랩이 끝나면 단독 주행을 하면서 타깃 타임과 에버리지를 설정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운전자의 성격이 나온다고 합니다. 유문세 씨의 주행은 시종일관 안정적입니다. 수더분하지만 기분을 잘 드러내지 않고 묵묵한 성격이 서킷 운전에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반면 저는 쉽게 흥분하고 실수가 있으면 좀처럼 거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지적받았습니다. 그렇다고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앞쪽에 차가 있고 눈에 보이는 목표가 생기면 빨라지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무전기 너머로는 인스트럭터들의 목소리가 끊임 없이 들려 오는데 인스트럭터들의 무전이 줄어들수록 레코드 라인이 완성된다는 의미입니다.
l 3차 동계훈련에서는 레이스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스타트 연습에 들어갔습니다
기본 교육 과정 외에 3차 동계훈련 때는 스타트 연습이 추가되었습니다. 출발 시 클러치 조작 방법과 출발 전 차가 움직이지 않도록 사이드 브레이크를 조작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좋은 스타트는 레이스의 결과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더군다나 아반떼 스포츠 원메이크 레이스처럼 모든 선수가 동일한 조건의 경주차를 타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스타트에서 제일 중요하고 어려운 점은 가장 이상적인 RPM을 찾는 것입니다. 클러치를 밟은 상태에서 이상적인 엔진 회전수(RPM)를 유지하고 있다가 출발 신호가 떨어지면 재빨리 클러치를 띄고 동시에 가속 페달을 밟아 출발해야 합니다. 초반에 굉음을 내며 출발한다고 전부가 아닙니다. 타이어의 그립이 잡히는 시점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기어 변속 시점도 드라이버가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l 운전자의 차량 조작 능력, 레이스 당일 주변 환경에 따라 스타트가 달라집니다
스타트는 그때그때 드라이버의 센스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기본적으로 RPM을 유지한 상태를 만드는 것도 상당히 어렵고 레이스 당일의 온도와 습도, 노면의 상태와 온도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조훈현 치프는 남은 교육 기간 동안 서킷에 들어갈 때 피트 출구에서 한 번씩 연습하는 미션을 내렸습니다. 이제는 주행을 위해 서킷에 들어갈 때는 스타트 연습을 위해 클러치를 세심히 조작하고 사이드 브레이크도 활용하며 진입합니다.
l 4차 동계훈련에는 빗길 주행을 시도했습니다
4차 동계훈련 때는 여러 가지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그 동안 연습해온 조건과는 날씨부터 타이어까지 모든 것이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운 조건이 주어졌습니다. 유문세 씨와 저는 아직도 ‘멘붕’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겨우 예선 시뮬레이션 과정을 시작했지만 비가 내려 노면은 미끄러웠고 새롭게 바뀐 타이어로 젖은 노면에서 적응해야 했습니다. 새로운 타이어는 수치상으로 이전에 사용하던 타이어보다 그립력이 높은 타이어였습니다. 그에 따른 주행 방법도 달라져야 합니다. 비가 내리는 상황에 대해 가장 기뻐한 사람은 조훈현 치프 인스트럭터 입니다. 조훈현 치프는 ‘빗길을 정복하는 자가 정말 빠른 드라이버’라고 강조했습니다. 빗길 기록과 마른 노면 기록 차이는 대략 4초 이상입니다. 첫 빗길 주행 이후 우리는 또 다시 쓰디쓴 좌절을 맛봐야 했습니다. 차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데다 기록은 계속 떨어졌고, 마른 노면보다 서킷을 좀 더 타이트하게 사용해야 하는 조건에 끊임없이 시달렸습니다.
l 이 사진 한 장이면 4차 동계훈련의 분위기를 한 번에 알 수 있습니다
기록 단축은 고사하고 빗길에서 악전고투하는 유문세 씨와 저는 실제 레이스에 출전하는 드라이버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즐겁고 신나던 수준을 이제 넘어서면서 점점 드라이버가 가져야 할 동물적 감각을 일깨우는 중이었습니다. 어느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에 예선 시뮬레이션까지 함께 진행했습니다. 실제 예선 상황이라는 가정 하에 5랩 안에 베스트 기록을 뽑아야 하는 도전과제까지 수행해야 했습니다. 차는 계속 미끄러지고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미끄러운 노면에서는 차의 움직임이 훨씬 더 민감하고 자칫 실수라도 하게 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l 현대 아반떼컵 레이스 예선 시뮬레이션을 통해 실제 레이스를 방불케 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빗길에서는 감속에 대한 부분을 가장 신경 써야 합니다. 극한의 타이어 그립을 이용하고 하중 이동을 적절하게 사용해야 비교적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습니다. 가속 역시 부드러워야 합니다. 급격한 가속은 타이어가 계속 미끄러지면서 앞으로 제대로 나갈 수 없습니다.
예선 시뮬레이션은 매우 어려운 과정이었습니다. 아마 이번 현대 드라이빙 아카데미 과정 중에 가장 힘들고 고전했던 부분입니다. 이제는 코스에서 나보다 느린 차는 알아서 피해가야 하고 빠른 차들에 자리를 내줄 때는 기록에 영향을 주지 않는 부분에서 추월을 내주어야 합니다. 헤드라이트를 켜고 앞쪽에 느린 차가 있으면 하이빔을 작동시켜 신호까지 해야 합니다.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4차 동계훈련을 마친 후 유문세 씨와 저는 좌절의 늪을 빠져나오기 위해 굉장한 노력을 했습니다. 그때마다 조훈현 치프는 ‘여기서부터는 여러분들의 마음가짐에 달렸습니다. 드라이버라면 누구나 지금 같은 과정을 겪게 되고 이걸 극복해야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습니다.’ 라는 충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두 명의 인스트럭터와 정비팀 등 모든 스태프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스트레스보다 주행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어떤 질책이나 실수에 대한 책임보다 앞으로 나갈 방법에 대해 충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l 기나긴 과정을 거쳐 마지막 동계훈련에 들어섰습니다
어느덧 길었던 동계훈련도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아침에 피트에 모여서 브리핑을 진행할 때 조훈현 치프 인스트럭터는 우리에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4차 동계훈련 때의 상황은 잊고 이제는 원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처음 우리가 서킷을 들어섰을 때와 같은 열정과 믿음, 즐길 줄 아는 마음이 마지막 동계훈련의 목표입니다.’
굉장히 의미심장합니다. 마냥 신나고 즐거웠던 첫 주행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아직까지는 좌절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포기는 없습니다. 만약 여기서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포기한다면 지금까지 거쳐온 교육과정과 준비를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준 팀 스태프들에게 면이 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동계훈련도 막바지인 만큼 저와 유문세 씨는 다시 한번 우리가 처음 만나서 서킷을 달렸을 때의 심정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l 동계훈련을 거치며 시간이 갈수록 기록이 상승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익숙합니다. 처음에 낑낑대던 6점식 안전벨트 매는 것부터 주행준비까지 이제는 조금씩 레이스 드라이버 티가 나기 시작합니다. 5차 동계훈련은 예선 시뮬레이션과 배틀 클래스(레이스 시뮬레이션)로 진행됩니다. 유문세 씨는 저보다 먼저 배틀 클래스에 진입했고, 저는 나머지 공부를 마무리하며 조금 늦게 배틀 클래스에 합류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처음 동계훈련을 시작했을 때 인스트럭터들이 설정한 기록과 도전과제를 어렵사리 완수했습니다. 힘겹긴 했지만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 상설 코스(3.045km) 기준 1분 37초, 1분 38초대 기록을 만들었습니다. 4차 동계훈련 때 깨지고 엎어지고, 스핀하고, 좌절했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l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프로그램, 배틀 클래스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배틀 클래스입니다.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프로그램입니다. 실제 레이스 상황을 가정하고 인스트럭터들이 운전하는 차를 따돌리거나 추월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배운 내용을 응용해야 하며 실전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접전을 펼쳐야 합니다. 그동안 스트레스와 중압감으로 작용했던 기록과의 싸움은 잠시 접어두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추월에 성공하던가 뒤에서 따라오는 인스트럭터들을 뿌리쳐야 합니다. 안전상의 이유로 상설 코스에서 추월할 수 있는 포인트를 미리 지정합니다. 좁은 틈을 뚫고 추월에 성공해야 합니다. 현대 드라이빙 아카데미 교육 과정의 종합선물세트와 같습니다. 배틀 클래스 초반에는 인스트럭터와 드라이버 둘 만 진행합니다. 오후 시간에 배정된 주행 때는 인스트럭터 한 명과 저와 유문세 씨까지 들어가 세 사람이 경합을 벌여야 합니다.
l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추월에 성공해야 합니다
마치 영화 ‘탑건’이나(40대 이상 분들에게 익숙합니다.) ‘분노의 질주 도쿄 드리프트’ 편에 나오는(스승이 제자와 직접 경합을 펼치는) 장면 같습니다. 세 대의 경주차가 한데 뒤엉켜 레코드 라인을 두고 경쟁을 합니다. 누군가는 막아야 하고 누군가는 뚫어야 합니다. 현대 드라이빙 아카데미의 프로그램 중에 가장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과정입니다. 이제부터 피 끓는 청춘 유문세 씨는 저의 팀메이트 이전에 경쟁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주로 방어 역할을 했는데 이 역시도 쉽지 않습니다. 뒤에 쫓아 오는 유문세 씨는 끊임없이 저를 괴롭히고 틈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렇게 현대 드라이빙 아카데미 1기 교육생들은 서킷이라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마지막 과정까지 하얗게 불태웠습니다.
l 현대 아반떼컵 레이스 출전을 위한 모든 교육 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현대 드라이빙 아카데미가 준비한 모든 교육 과정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작년부터 진행된 Basic (2017년부터 Fun&Safety), Sport 클래스를 거쳐 5주간의 동계훈련 과정까지 큰 사고 없이 마무리했습니다. 랩 차트처럼 영암 KIC 상설 트랙 기준 1분 50초에 달하던 기록은 무려 10초 이상 당겨져 1분 38초까지 단축되었고, 레코드 라인 따라가기도 벅찼던 주행은 어느새 경합하면서 레코드 라인을 지키는 노력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향상되었습니다.
여러 가지가 시원섭섭합니다.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미련도 밀려옵니다. 그래도 어떤 목표에 매달려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이 정말 오랜만입니다. 새로운 인연과 추억을 만들었고, 차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었던 시간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값진 것들입니다. 아울러 자신의 한계와 싸우고, 돌아보며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제 20대 청년 유문세 씨와 불혹에 진입한 저는 현대 드라이빙 아카데미를 발판 삼아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결코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도전이 시작되며 좀 더 크고 치열한 세계를 향해 출발합니다. 마지막으로 향상된 랩 타임이 기록된 첫 랩 차트와 마지막 랩 차트, 레코드라인에 점점 가까워지는 영상을 끝으로 이번 포스팅을 마무리합니다.
필자는 자동차 칼럼니스트로 각종 자동차 전문 매체에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코리아 스피드 페스티벌(KSF)과 WRC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입니다.